백색 공포 풀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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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1
만으니까 ㅠ 답변 꼭 부탁드릴꼐요 백색 공포 228기념공원에 대해서 보고서를 써야하는데...자세히좀 알려주세요왜 이 기념공원이 세워졌고,무엇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나...등이요 ㅎㅎ내공
궁금한 위치 동성로1가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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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궁금해요 백색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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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백색 공포 2번째
서강전문학교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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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답변수4,431
2008.08.21. 14:28
페이지 이동 백색 공포 프로필
아래의 내용은 "2,28대구 민주운동 기념 사업회" (http://228.or.kr/main.php)에서 옮겨온 내용 입니다. ※2.28기념중앙공원이 터는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로서 대구를 빛낸 많은 인물들을 길러낸 요람이자 우리나라 민주화의 진원이 된 2.28민주운동의 거룩한 자취가 서린 곳이다.
대구시가 만촌동으로 옮겨간 이 학교 자리에 2.28기념 중앙공원을 조성한 것은 그 같은 뜻을 길이 전하기 위함이다.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독재와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선 대구 학생의거는 들불처럼 번져 3.15 마산 의거를 출발하였고 위대한 4.19 혁명을 성취시켰다.
이 곳에 민주화를 선구한 대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시민 모두의 영원한 삶의 터전으로 가꾸게 하리라.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으킨 민주적 저항운동이었다.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했고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맞아 정권의 부패와 부정으로 민심이 이반했음을 알고도 부정선거로 집권을 연장할 것을 기도했다. 백색 공포 -서기 2003년 12월 ※2∙28민주운동  2∙28민주운동은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 실정이 절정에 다다르며 국민들의 생활과 감정이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할 만큼 빈곤과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한 시대 상황에서 일어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이 같은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 음모가 진행되면서 정∙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 2월 28일 대구 시내 수성천변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張勉)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계획되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엔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자유당 정권의 악정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소리없는 여론이 전국을 메아리 쳤고 대통령 선거엔 야당 후보인 조병옥 박사에 초점이 모였으나 불행하게도 조박사가 서거하는 바람에 부통령 후보인 장박사가 모든 여망을 걸머졌다. 이 때문에 일요일인 그날의 수성천변 유세는 대구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이목이 집중돼 자유당 정권의 감시에도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선거의 패배를 예감한 자유당 정권은 이성을 잃고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고, 학교 당국은 온갖 핑계로 일요 등교를 강행했다. 어린 학생들마저 정치적 도구로 희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학교에 따라 갑자기 임시시험을 친다고 했고, 단체 영화 관람이나 토끼 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일요 등교를 종용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당 정권의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간계를 간파한 학생들은 불의에 몸을 떨었고 그날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이 같은 자유당 정권의 불법과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로 바꾸어 궐기했고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당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통을 거쳐 경북도청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 당사,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했다. 숱한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통을 받았고 교사들도 모진 책임추궁을 받았다.
  독재에 움츠렸던 언론도 마침내 2∙28대구학생의거를 보도함으로써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궐기와 시위에 나섰다. 당시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고, 기성세대들도 말 못했던 공포분위기를 고등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민주적 의사표시를 한 것이었다. 대구시민들도 경찰에 쫓겨 도피하는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2∙28은 당시 참여주체가 고등학생들이었지만 그 시대의 부모, 형제 가족의 암묵적 동의와 대구시민의 시대정신을 담은 반독재 민주운동의 분출이었다.
들불처럼 번져 3.8대전, 3.10수원,충주,3.12부산,청주의 고교생 등의 궐기로 전국적 확산에 이은, 3∙15마산의거, 4∙19혁명, 4∙26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인 4월 혁명을 완수했다. 백색 공포   2∙28대구학생의거는 광야를 태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2.28민주운동은 독재와 부정에 저항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었고, 국가의 민주적 정통성을 심는 선구적 역할을 한 자랑스런 대구의 역사인 것이다. 100년 전 대구에서 일어나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서 전국민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국채보상운동의 반외세 자주화 정신과 함께, 대구∙경북 시도민, 영남인의 자랑스런 시대정신으로 부활, 승화 시켜야 할 것이다
※2.28 대구 학생의거 기념탑
2.28 대구학생의거 기념탑은 2.28의거가 일어난 다음해 전국의 애국시민과 학생들의 성금(720만환)으로
1961년 4월 10일 지금의 명덕네거리 가운데에 건립 기공식을 하여 이듬해 4월 19일 기념탑 제막식을 하여
1990년까지 명덕네거리에 있었습니다. 백색 공포
차량의 증가와 교통 혼잡 등으로 1990년 2월 28일 지금의 두류공원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념탑의 형상
남녀학생을 상징하는 2개(10M,7M)의 탑신을, 순결을 의미하는 백색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탑의 받침대는흑색의 대한민국 지도, 탑의 한쪽 다리가 대구를 디디고 있음은 대구가 혁명의 발상지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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